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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과 암호 : 고구려의 기와 문양 | 전곡선사박물관

예술과 암호 : 고구려의 기와 문양 | 전곡선사박물관

jgpm.ggcf.kr

 

2019 전곡선사박물관 전시

 

<문양, 예술의 시작>

 

나는 진화론도 창조론도 잘 모르겠다. 어느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, 이 둘 사이에 어마어마한 간격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어처구니없게도 둘 다 허무맹랑한 점에서 동일한 허상인지 난 잘 모르겠다. 사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, 외우라고 하니 외웠고 들었으니 안다고 착각하고 살아온 것일 뿐. 진정으로 내가 아는 것이 몇이나 될까, 저 하늘의 예쁜 별들도 난 잘 모른다. 이름도, 밝기도, 운행도, 은하수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. 작정하고 보름달을 올려다 본 적이 있는데, 그저 둥근 것 뿐 아니라 눈부시게 밝고 빛이 나서 금세라도 나의 몸뚱이가 증발해버릴 것 같은 위력이 있었다. 보름달이라고 불렀던 만만한 형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가 되어 버리고 나는 그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존재로 돌아온다. 만 년 전에도 달을 올려다 본 어떤 사람은 나의 심정이었을까? 파도가 출렁이고 얼음이 녹아버리고 땅이 바다가 되어 버리는 긴긴 과정을 잠깐 살다가 가버리는 인간이 인지하고 있었을까? 두려움 뿐 아니라 봄 향기에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환희를 느꼈을까? 곡물을 넣을 토기를 만들고 거기에 선을 긋는다. , 흙과 물 위로 그어지는 선 자국, 이 공간과 저 공간이 나누어지고 반복되는 선들은 율동이 된다. 점들이 심장박동처럼 살아나고 곡선을 그을 때면 파도가 생각난다. , 온통 자연이 된다. 하늘에서 비가 오면 그 기쁨과 경이로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? 푸른 하늘이 뭉실뭉실 구름이 되고 회색빛이 되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물줄기를 내려주다니, 하늘 위에는 어여쁜 여신이 살고 있나보다. 저 여인의 아름다운 머릿결처럼, 곡선 같기도 하고 직선 같기도 한 빗줄기들, 흙과 물, 불과 바람이 만들어 준 토기 위에는 어김없이 문양이 새겨졌다. 이 땅에도 저 북쪽 땅에도. 나는 종종 생각한다. 인간은 흙 위에 선긋기, 최초의 예술행위를 한 이후 지금까지도 그 행위를 반복한다. 원형의 외곽을 따라 선을 그어보라. 얼마나 놀라운가, 시작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니. 간격을 나누면 리듬이 생긴다, 저 하늘의 해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아침에 나타나듯이, 기다리면 봄이 오고 밤이 가면 아침이 오듯이. 토기 위의 선긋기는 그 손의 주인공, 주인공의 심장소리가 새겨있다. 나는 생각한다. 인간은 예술의 동물이다, 자신의 선긋기에 깜짝 놀라고 그 선긋기의 놀이에 빠져든, 귀엽고도 뛰어난, 예술의 동물이다. 문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문양놀이를 했겠는가,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, 반복과 변주, 도취와 절제, 하늘과 땅, 빛과 바람까지 선 속에 담아내는 능력, 나는 진심으로 이 땅에 살았던 그 손의 주인공, 주인공들에게 감탄한다. 문양은 사라지지 않는다.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, 그것은 항상 행운과 선함을 불러일으키고 싶어 했던 우리들의 부적이었다.

 

-김혜련 작가노트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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